이번에 분리수거를 하며, 문득 든 생각이다. 예전에는 그저 캔, 페트병, 종이, 유리 정도로만 분리수거 했던거 같은데
요새는 치킨뼈에 붙은 살도 다 발라야하고, 페트병에 붙은 비닐들도 다 분리해서 배출해야 한다..
하지만 그 어디서도 제대로 분리수거에 대하여 알려 주지 않는다. 그저, 뉴스 기사나 보고 따라하는 것이다.
오늘도 분리수거를 하며, 상상을 해본다.
1장
부쉬럭.. 부쉬럭...
서걱.. 서걱...
"오빠, 여기 봐봐 노란색이랑 빨간색이 같이 잘렸잖아, 다시 잘 잘라"
오늘은 분리수거를 하는 날이다..
옛날이 그립다..
비닐, 캔, 플라스틱.. 종류별로 분리수거 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종류별로 분리수거 해야하는 것 뿐만 아니라 재질, 크기, 오염도 등 여러 분류 기준에 따라 나눠야하며,
심지어, 색깔별로 분리수거 해야한다.
"여보, 나 색깔별로 다 나눴어. 이제 그만 출발할까? 늦으면, 또 우리 다시 예약해야 하잖아."
"그래, 이제 이정도면 됐다. 출발하자. 진짜 저번처럼 늦게 갔다가 다시 돌아오면.. 진짜 이 쓰레기 더미에서 한달을 더 살아야되잖아"
2장
이제는 분리수거 양도 많아지고 분류하는데도 시간이 오래 걸려서 동네마다 분리수거 센터가 새로 세워졌고 거기에 예약하여 쓰레기를 버려야 한다.
'쿵..'
"여보, 쓰레기 다 실었어. 이제 출발하자..어후, 무슨 쓰레기를 차에 넣는데 30분이 걸리냐.."
차로 5분이면 분리수거 센터에 갈 수 있다. 예전이면 역세권, 맥세권 등이 유행했지만,
이제는 분리수거 센터가 코앞에 있는 분세권이 대세다..
이곳은 얼마 전 이마트였지만, 주민들의 성화로 분리수거 센터로 탈바꿈하였다.
그리고 집값도 폭등 하였다...
이마트를 통째로 분리수거 센터로 만들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한번에 분리수거를 할 수 있다.
센터에는 여러개의 분리수거 구역이 있다.
한 구역당 한 가구가 쓸 수 있으며, 그 크기는 3평정도 되었다.
키오스크에는 한 다섯 군데 빈 곳이 있었다.
예약번호를 키오스크에 입력한 뒤, 나는 1층 A-58 구역을 선택하였다.
차를 이끌고 A-58 구역으로 갔다.
그 곳에는 여러개의 분리수거함이 있었다. 크게 캔, 플라스틱, 비닐, 유리, 종이 등으로 나눠져 있지만, 그 분리수거함에 따로 색깔별 크기별로 한번 더 선택하여 내가 버려야하는 쓰레기의 종류를 세세하게 선택하여야 했다.
차 트렁크에서 쓰레기를 꺼내기 시작하였다.
"오빠, 먼저 종이부터 시작하자. 쉬운 것부터 빨리빨리 해서 진짜 오늘은 다 버리고 가자"
분리수거 센터는 예약제로 운영되며, 한시간만 딱 이용할 수 있다.
만약 그 시간이 지나도록 분리수거를 다 못하면, 다시 집으로 가져가야한다..
"자 여기 일단, 가로 30cm 이상 종이 박스 부터 줄게.."
작은 박스 부터 차례대로 분리수거함에 넣기 시작했다.
'삐빅.. 종이 박스에 파란색 인쇄물이 부착되어 있습니다.. 수거해 주십시오.."
"아놔.... 아니 무슨 도대체 색깔별로 모아야하는건 뭐지..? 진짜 이게 환경을 지키는 일이 맞아?"
"오빠, 일단 오늘 버려야할 거 많으니까 이거 일단 뒤로 빼놔"
쓰레기에 그 어떤 다른 색깔이 있다면, 분리수거를 할 수 없도록 음성이 나온다.
그래서 최근에 대부분에 포장 박스나, 봉지들이 단일 색으로 나와 분리수거를 색깔별로 할 수 있도록 나오고 있다.
"여보, 이제 가자. 하 벌써 끝날 시간이 됐네.."
"웅 그래도 이번에는 많이 처리했다 진짜, 속이 후련하다.."
"그래 어서 빨리 집들이 준비도 해야하네 어후.. 주말이 더 바쁜거 같아.."
"아! 그러네, 빨리 가자"
3장
최근에 집들이 트렌드가 바뀌었다. 예전에는 배달 음식을 시켰겠지만, 점점 분리수거가 하기 힘들어 지면서 배달 음식에서 나오는 쓰레기들이 점점 부담이 되어 갔다. 그러면서 집들이의 초대받은 사람들은 각자 본인의 집에서 개인 용기에 음식을 담아서 가져온다. 물론, 확실히 쓰레기가 줄고, 집들이 하는 입장에서도 준비해야할 음식도 줄어들어 좋기는 하다.
오늘은 아주 스페셜한 음식을 준비해 보고자 한다.
'띵띠동동.. 띵띠동동.."
'철커덕'
"안녕하세요~~ 들어갑니데이~"
"와 집 진짜 좋은데로 이사 왔다! 분리수거 센터 앞이라니..."
"진짜 분리수거하러갈 때 편하겠네. 우리는 진짜 너무 멀어서 맨날 가는 길에 싸우잖아. 증말 이사 좀 가자고.."
내 친구들 세명이 집에 왔다.
다들 집 좋다고 말해주니 기분이 좋구먼..
"다들 배고프시죠..? 얼른 자리에 앉은세요. 오빠, 여기 식탁 좀 닦아줘~"
"아 네네 여기 저는 같이 먹으려고 집에서 떡볶이 가져왔어요. 남기면 안될거같아서 적당히 가져왔어요 ㅎㅎ"
다들, 각자 준비한 음식들을 용기에서 꺼내 보였다.
떡볶이, 피자, 보쌈 등등을 꺼내 보였다.
그리고 나의 비장의 음식을 냉장고에서 꺼내 식탁에 두었다.
"헐!!! 이거 괜찮겠어..? 진짜로 이걸 준비했단 말이야..?"
"너 진짜 미쳤구나.. 이거 우리 진짜 먹어도 돼?"
다들 내가 주방에서 가져온 음식에 다들 놀랐다. 아마 한동안 분리수거 때문에 먹지 못했을 것이다.
분리수거 극악의 난이도..
정부에서도 왠만하면 먹지말라고 권고한 음식....
양념 게장..
양념 게장을 분리수거 하려면 일단 양념을 깨끗이 씻어 내야한다.
그리고, 게껍질에 붙어 있는 게살들을 다 발라내야 한다.
특히 게 다리 안쪽에 붙어 있는 살들은 못보고 그냥 버릴 수가 있기 때문에 각별히 주의 하여야 한다.
그렇기에 그 누구도, 감히 게장을 먹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먹는 시간보다 분리수거를 위해 준비해야하는 시간이 더 길기 때문이다.
"얘들아, 진짜 큰 맘먹고 준비했다. 우리 진짜 양념 게장 안먹은지 몇년이 됐잖아. 내가 책임진다. 진짜 배터지게 먹자"
어느새.. 양념 게장의 빨간 시체만이 가득 쌓여 있었다...
4장
"쿵쿵쿵"
"쿵쿵쿵"
"문 열어 보세요!! 어서"
"안에 계신거 압니다! 나와 보세요!!"
집들이 후 일주일이 지나고, 토요일 아침 대문밖에서 시끄러운 소리에 잠에서 깼다.
대문 밖으로 많은 사람들의 부산스러운 움직임과 소리가 안방까지 크게 들려온다.
"헐! 이게 뭐야!!!"
"이게 뭔일이지??"
와이프도 잠에서 깨 침대 옆 협탁에 놓인 핸드폰을 보고 기겁을 하였다.
핸드폰 화면에는 온갖 알림으로 가득찼다..
부재중 전화 수십통
카톡 알람 수백통....
정신이 몽미하다...
꿈인가...
집 밖으로 웅성웅성 소리와 와이프의 다급히 전화 받는 소리
평화로운 토요일 아침부터 어안이 벙벙하다...
"오빠! 진짜 미치겠다. 증말로 빨리 유튜브 봐봐!!"
와이프는 잔득 상기된 목소리로 전화를 끝내고 오른손에 쥐고 있던 핸드폰으로 나에게 유튜브를 보여주었다.
유튜브 썸네일들을 보며 나는 또 한번 놀라였다.
온갖 실시간 급상승 동영상에는
'일반쓰레기에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을 찾습니다'
'아직도 분리수거를 제대로 안하는 사람이 있다고?'
등등으로 분리수거 관한 내용들로 가득찼다.
그리고 그 썸네일에는 우리 아파트가 배경이 되었다..
계속해서 우리 집 벨이 울린다...
정신을 차리고 거실 티비 옆 쪽 벽에 달려있는 인터폰을 받았다.
"네 여기 궁금한 이야기 H 입니다!"
"이것이 알고싶다에서 나왔습니다!!"
"혹시 양념게장에 껍질과 속살을 분리해서 버리지 않고 한꺼번에 일반쓰레기에 버리신 분 맞으시나요?"
"어떻게 해서 양념 게장을 먹을 생각을 하셨습니까??"
"게를 제대로 분리수거 안하고 그렇게 버리면, 들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 겁니까?"
인터폰 너머로 많은 사람들이 본인들의 하고 싶은 얘기들을 지껄이고 있다...
나는 인터폰을 다시 내려놓은채 주저 앉았다...
하... 지난 주 내가 했던 일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내가 미쳤지... 내가 왜 그랬을까...
-To be continued-